[오늘 내용은 동학농민전쟁 복습이다.]
동학농민전쟁의 이름부터 보자.
+ 동학: 동학을 믿는 사람들이 일으켜서
+ 농민: 주된 참여자가 농민이다.
+ 전쟁
= 동학 믿는 농민의 전쟁
이라고 간단히 머리에 넣고 출발~~🚋🚋
동학농민전쟁은 1894년부터 시작이 된다.
이전까지는 (1892, 3년에는 집회를 여는등.. )
농민전쟁은 흐름 타는게 중요합니다
1. 고부민란
: 고부민란은 동학농민전쟁의 시작이야!
: 우선 '고부'는 지역 이름임.
: '민란'은 봉건 체제 (신분제)의 일반 백성이 생존이 힘들 정도로 수탈을 당할때, 이를 타기 하기 위해 봉기하는 경제 투쟁. 권력 장악의 의도는 없다.
: 고부 지역의 군수(대장)이던 조병갑은 못된 사람이었어.
: 포악한 정치를 하며 농민들을 못살게 굴었어.
: 이로 민란을 일으키기로 맘 먹은 우리의 전봉준과 송두호 등 30여명은 그 유명한 사발통문을 썼어.
in 1893년 11월
'사발' (=둥근 그릇)에 두고 이름을 써서 누가 대장인지를 알지 못하게끔!
만약 이름을 한줄로 쓰게 된다면 가장 먼저 쓴 사람이 책임자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민란을 준비하고 있었는디...
어라라?
그 못된 조병갑이 곧 임기가 끝난다데?
'익산'으로 발령난다네?
그럼 뭐 애매하게 됐지만 뭐 좀만 버티지 뭐..
그런데 또 다시 어라라?
이 조병갑 봐라?
돈 내고 고부에 계속 있기로 했다네?
그래서!!
봉기를 하기로 맘 먹은 우리의 전봉준 팀!
-> 1894년 1월 9일
말목 장터에서 전봉준 팀이 봉기를 시작.
--> 1월 10일
고부 관아 점령 성공!
조병갑은 전주로 도망🏃♂️🏃♂️
BUT 조병갑 잡기 성공~
🙃🙃🙃🙃🙃
다시 사발통문으로 돌아가보자!
사발통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하라.
-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하라.
- 군수에게 아첨하여 인민을 침학한 관리를 격징하라.
: 요기까지는! 다른 지역 봉기에도 있는 내용이라 딱히 특별하지는 않은데..
- 전주영(전주성)을 함락하고 경사(서울)로 직접 향하라.
: 이건 다른 지역 봉기에는 있지 않은 스페셜한 내용.
: 전봉준 팀은 애초에 서울까지 점령해서 반봉건 사회 제도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
조병갑이 잡혔다고 했지!?
그럼 이제 고부의 군수 자리가 비었짜나
그래서 새로운 군수로 '박원명'이 왔어.
이전 군수가 못되게 굴어서 군중들에게 쫒겨나서인지, 박원명은 고부군민들을 살살 달래며 활동했어.
BUT 문제는 박원명의 보조 역할로 온 '안핵사'를 하게 된 '이용태'
왠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돈 때문일것 같기는 하지만) 이용태는 봉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잡기 시작...
그리고는 돈을 내면 풀어줬어.
물론 돈을 내면 풀려날 수 있지만 그러기 싫었던 우리의 전봉준은 다른 지역으로 도망을 선택했어.
그런데 이는 새로운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 봉기가 전국으로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됨.
이용태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럴 기회가 오지 않았겠지?
역사는 참 순간 순간 사소한 걸로 시작이 되는거 같엉
2. 무장기포
: 전북 고창군 무장면
: '무장'이라는 지역에서의 봉기
: 왠 무장이 나오냐면, 전봉준이 이용태를 피해서 온 곳이야.
잠깐! 이걸 기억하나?
'접' 이라는 단어.
접은 동학이라는 종교의 세력이야.
무장접주 (무장 지역의 접의 최고 높은 사람.)는 '손화중'
태인접주는 '김개남.'
무장에서 이들은 농민전쟁의 시작을 알렸어!!
3. 백산봉기
: 전북 부안군 백산면
: 백산에서 농민군은 그들의 규칙인 4대 명의와 12개조 행동 강령을 선포했어!
4대 명의를 살펴보자
그러면 농민전쟁의 성격을 알 수 있거등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왜놈을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는다.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귀족들을 없앴다.
-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유: 우리는 개인적 원한을 풀지 않으니까
- 근데 왠 가축을 잡아먹지 말래? : 그 시절 농민들에게 가축이란, 재산이거든. 즉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이거야.
- 귀족을 죽인다고? 반봉건적 성격이다!!
이런 4대 명의로 민심은 농민으로 돌아갔어.
원래 전쟁 나면 그 지역은 아주 박살 났는데 이 농민들은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아니까 4대명의를 철저히 지키며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백성들에게 가지 않게 했어.
BUT 이는 나중에 핸디캡이 되어버림.
EX) 전쟁하러 가다가 벼농사 짓는 곳 나오면 돌아가고 그랬거든.
4. 황토현 전투
in 전북 정읍
결과는 우선 농민군의 승리~~~
전주의 아주 강한 군대인 '감영군'을 상대로한 전투에서 대승!
5. 황룡전투
in 전남 장성군 황룡면
이 시각 서울
'뭐라고? 농민들이 난을 일으키는데 농민들이 계속 이기고 있다고? 이러다가 서울까지 점령 당하겠어!'
중앙군 '경군' 출격!
근데 중앙군이랑 전북에서 시작한 농민이 왜 전남에서 싸웠냐면!
경군이 서울에서 배 타고 전남으로 도착했거덩
근데 어라라! 이 전투도 농민의 승리
6. 전주성의 점령과 전주 화약
농민들이 전남에서 승리하면서 전주성은 점령되었어. 1894년 4월 27일
그리고 그 결과 정부와 일명 '반란군'은 평화 협약인 전주 화약을 맺었어. 1894년 5월 7일
왜 정부가 빠르게 협약을 맺었냐면...
여기에는 스토리가 좀 있어.
농민이 협약에 빠르게 콜한 이유!
정부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그리고 '농민전쟁'때도 청에게 SOS 친걸 기억하고 있어봐.
- '갑신정변' 때,
톈진조약: 일본도 우리나라에 왔었는데 일본이랑 청이 서로 한국에 오면 서로 말해주기로 함.
- 농민전쟁
: 청은 우리 정부의 부름으로 한반도에 왔고, ('아산' 지역에 도착.) (1894년 5월 5일)
톈진조약으로 일본은 한반도에 왔어. ('인천'으로 도착.) (1894년 5월 6일)
농민전쟁을 일으키던 농민들은 이 생각을 하게 되었어.
"엥?
우리는 우리나라의 사회를 개혁하고자 봉기를 일으키는 중인데 이로인해 외세가 우리 나라에 와버렸네?
민족적 위기 상황이다!!!"
정부가 빠르게 콜한 이유!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근본이야.
이성계는 전주 이씨야.
'조상의 위패가 있는 곳이 점령 당했어!
얼른 평화 협약을 맺어 지켜야해!'
그렇게 농민군은 전주성 철수 조건으로 폐정 개혁안을 제시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어.
폐정개혁안의 내용은 대략...
- 이러이러한 나쁜 사람들 벌 주세요
- 신분제 없애줘
- 여성 평등
- 이상한 세금은 없애
- 친일 처벌해
(와우 1894년이라고 생각해보면 매우 혁명적이다 그지?)
전반적으로 반봉건 성격을 띈다는걸 기억하자!
농민이 이겼자나!
그리고 농민들이 원하는 파격적인 내용이 있는 폐정개혁안
이를 잘 실현하기 위해서
'집강소' 설치
: '집강'이란 농민 대표
: '집강소' 란 집강이 수령을 대신해 행정을 행하는 곳
: 농민들이 직접 통치했다는 말이야.
여기서 봉건체제(신분제)를 없애버렸어.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런 혁명적인 일이 일어났다니 정말 감격스러워
---> 여기까지를 제 1차 농민전쟁 이라고 하고 1차 농민전쟁은 반봉건, 반외세적 성격을 띤다.
전주성이 점령당하고 정부가 청에게 SOS 쳐서 청이 한반도에 오고 일본이 톈진 조약으로 한반도에 왔다고 했지?
이렇게 한반도에 온 일본.
왜인지 농민전쟁이 마무리가 되어도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어.
일본은 전주에서 점점 올라가더니 양력: 7월 21일에 경복궁을 점령해 --> 갑오변란
그리고 1894년 양력 7월 25일에 청일 전쟁을 일으켜.
(일본은 도대체 뭐하는 나라냐...)
근데 몇몇 사람은 그러면 농민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결국 일본이 우리 나라에 간섭을 시작하게 된거 아니냐 라는 말도 하는데
노노!
일본은 1894년 갑신정변부터 청일전쟁을 준비했어. 10년간 청과 싸울 힘을 길렀고 마침 기막힌 타이밍이 온거야.
갑신정변을 간략히 설명하면,
임오군란(신식 군대로 차별당하기 시작한 구식군인이 일으킨 사건)으로 쿠데타의 희망을 본 개화파들이 일본과 힘을 합쳐 일으킨 '갑신정변'
그러나 이는 청에게 SOS친 정부로 인해 실패했는데 사실 이는 청을 이길 자신이 없던 일본군이 후퇴하며 실패한겨.
이때부터 조선은 급격히 친청이 되었지.
하여간 10년간 준비한 일본은 그 힘쎄다는 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어.!!!
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
승리로 일본은 '대만'과 '요동' 지역을 GET!
근데 뜬금없이 여기에 낀 나라가 있음.
러시아
왜 꼈냐.
러시아는 이 전부터 '요동'을 탐내고 있었거덩
그래서 혼자 뭐라하면 그러니까 프랑스랑 독일도 끼라고 하고 : 삼국간섭
'야 일본! 요동은 다시 청한테 돌려주지?'
근데 이 당시 일본은 러시아랑 이길 자신은 없었어. 그래서 okay...
'요동'은 돌려주지만 나라의 3년치 예산금을 현금으로 받기로 한 일본.
--> 이는 청에게 엄청난 큰 타격이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청은 무너지기 시작.
아까 청과의 전쟁으로 일본이 10년간 준비했다고 했지?
이번에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10년간 준비했고
일본은 10년후인 1904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를 싫어하던 영국의 도움으로 승리했어.
그렇게 조선 먹기의 라이벌을 모두 이긴 일본은 가뿐히 조선을 먹었어...
갑오변란으로 그리고 청일 전쟁을 승리한 일본은 노골적으로 내정간섭을 시작해.
이로인해 비롯된 제 2차 봉기
제 2차 봉기는 1차와는 아주 다른 성격이야.
1차는 조병갑등의 못된 관리들로 인해 반봉건적 성격을 띤 봉기였다면
2차 봉기는 반외세 항일 투쟁이야.
7. 우금치 전투
: 우금치 전투가 사실상 농민 전쟁의 마지막 전투야.
왜냐면 그 후로는 사실 일방적으로 당했거든.
- 농민군은 동학의 남접 세력이 자신들의 거주지인 충청도 논산에 10월 16일에 집결했어.
-- 일본은 '공주'에 있었어. 2천명의 특전사가 있었어.
--- 남접은 북접을 11월 20일까지 기다렸어. 그렇게 2만명이 모였어.
(공주와 논산의 중간이 우금치.)
수는 정확하지 않음.
이렇게 수적으로는 당연 이겨야 하는 전투는 참패.
우리 농민들은 전멸당했고 일본군은 죽은 사람이 없어.
WHY?
1. 농민군의 전략적 오류
: 일본군의 신무기에 대한 판단 착오
2. 날씨와 군수품 문제
: 농민군은 10월부터 모였단 말이야. 그리고 전투는 12월에 일어났어.
10월의 옷으로 12월에 버틸 수나 있겠어?
1894년의 농민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려.
성공만 있지는 않았어. 그래도 의의를 찾아보자.
의의
1. 반봉건 근대민족 국가 수립을 목적으로 했고 근대화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2. 사회 혁명을 지향한 농민전쟁으로 조선후기의 농민운동의 총결산이며 근대 민족 운동의 출발점이다.
민중의 사회 경제적 성장과 의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근대 변혁운동의 시작이다.
3. 중세 봉건 체제의 붕괴를 야기했고 이는 신분제의 해체 과정에 돌입하게 했다.
4. 반침략 반외세 민족 운동의 선구적 역할이었으며 침략에 가장 먼저 나선 민족 운동이다.
1894년은 봉건제를 끝낸 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해이다.
이렇게 길었던 동학 농민 운동을 마무리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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